우주에 널려 있는 현무암(Basalt)에서 미생물의 대사 활동으로 바나듐(Vanadium)을 추출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주의 미소(微小) 중력 상태에서 바나듐을 추출한 결과, 지구보다 생산성이 2.8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나듐은 강철에 첨가되는 핵심 원료로 이번 연구 결과는 우주에서 원료 자급자족의 길을 여는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1일(현지시각)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찰스 코켈(Charles Cockell) 영국 에든버러대 우주생물학센터 교수가 중력이 감소하는 조건에서 미생물채광(Biomining)을 실시한 결과 바나듐 채광이 최대 283%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미생물학 프런티어'(Frontiers in Microbiology)에 실렸습니다.
미생물채광은 미생물의 자연력(natural power)을 활용해 암석에서 원소를 추출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이 방식은 화학적인 채광 방식이 아니고 미생물의 대사 활동을 활용해 친환경 연구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달과 화성의 암석에선 지구에서 상대적으로 구하기 힘든 원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래 자원 '바나듐'
코켈 교수 연구팀은 2019년 7월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미생물채광 반응로'(Biomining reactor) 18대를 보냈습니다. 유럽우주국(ESA)에서 진행하는 이른바 '바이오록'(BioRock) 실험 프로젝트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미생물이 중력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도 암석을 소화해 제대로 기능하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연구팀은 반응로에서 미생물을 활용해 희토류 추출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한 바 있습니다.
희토류는 존재하는 수가 많지 않은 희귀한 금속을 일컫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전략 자원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나듐은 17개 희토류 안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최근 바나듐을 이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등의 쓰임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박인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향후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질 텐데 기존 배터리 기술로는 한계가 있어 바나듐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면서 "바나듐을 활용한 배터리 시장이 형성되면 다량의 자원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바나듐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달·화성에 널린 현무암, 미생물로 바나듐 추출
달과 화성에는 현무암이 흔합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미생물이 우주에서 원소들을 채굴할 뿐만 아니라 미소 중력 조건에서 미생물이 훨씬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코켈 교수는 "우리는 중력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에 놀랐다"면서 "우주정거장에서 대류나 침전이 없어도 미생물이 최대 농도로 자랄 수 있었고, 따라서 중력이 다른 환경에서도 바나듐을 동일한 방식으로 채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또 "광업은 문명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면서 "광업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마을과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한 이후 이어져 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미생물에 먹을 것을 주면 미생물은 채굴한다"며 "이 방식은 화학적 채굴 방식과 달리 환경친화적이고 적은 에너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연구팀은 우주 환경에서 미생물 채광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미생물 채광은 지구에서 발사될 때 원료 공간이 크게 차지 않는 이점을 지닌다. 달이나 화성 기지 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지구에서부터 싣고 가는 건 경제성이 맞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우주에서 자급자족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바나듐 추출을 현지에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입니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미소 중력 상태가, 오히려 지구 중력조건에서 보다 미생물의 생산성에 유리하다는 것은 놀랍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달에 이어 화성 정착시대에는 인류가 현지 자원을 가지고 자급자족해야 하는데, 중력이 약한 곳에서 미생물이 더 잘 기능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신호"라면서 "지구의 경제권으로부터 독립해 우주에서 무언가를 채굴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현지 자원 활용의 길이 본격적으로 트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